김훈 지음
학고재
이 책 역시, 중고서적으로 구한 책이었다. 전 주인이 김훈작가의 팬이었는지 아마도 지금 내 책꽂이에 꽂혀있는 칼의 노래(1,2편)도 같은 사람으로부터 구매하지 않았나 싶다. 요새는 책을 내놓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book shopping의 즐거움이 없다....
이 책을 구입하고, 한 동안 책꽂이에서 숙성의 기간을 가졌다. ^^;
이 전의 blog글에 올렸듯이, 사람이 그릇이 되어야 그 책이 읽힌다는 말을 썼다. 아직 내가 보기에 적절치 않은 책이었나 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거리감을 두고, 나를 숙성시키고, 책도 나에게 맞도록 숙성시키는 시간을 가져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책을 읽기시작하였다.
책을 너무 의인화하는 것처럼 보이나, 나에게는 책을 읽는 것이 그렇다. 요네하라마리처럼 다독이 되지 않는 나이기에, 한권 한권 정성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나면, 책의 앞장에 독후감을 적어둔다. 적어둔 독후감을 보면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사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그 만큼 written history를 기초하여 상황들을 설정하여 창작한 약간의 허구가 들어간, 그러나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리고 책에서 문구를 인용하자면, 요사스럽지 않고, '말을 접지 말고, 말을 구기지 말고, 말을 펴서 내질른 말' - P284- 로써 이 책을 꾸려나가고 있다. 감언이 아닌, 직설화법으로만의 대화라고 할까.... 풍경과 작가의 생각을 묘사로 나타내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 책은 너무나도 투명하다....간혹 작가의 철학관과 세계관을 등장인물을 통해 나타내는 부분도 유교의 도인지 짧은 나의 식견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부분도 종종 나온다. 유가무요 무가유이니,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만남속에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속에 다시 만남이 있다는 불교의 도도 느껴지기도 하였다.
다만, 뼈저리게 느낀 점은 치세권력자와 피치세민의 관계에서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뱉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어느 조직이나 어느 만남에서도 늘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부러워하는 다른 작가가 있다. 김훈작가님은 집필시 컴퓨터를 쓰지 않고,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집필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작가 (김영하) 의 경우, 집필을 위한 (집필만을 위한) 준비를 여러가지 (노트북컴퓨터, 어댑터, 외장하드등)로 해야하는 반면에 작가는 단촐해서 부럽다는 글을 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내 인생을 단촐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가도 몰아쳐오는 번뇌와 욕심에 이를 망각하고 한참을 휩쓸리고 난 후에, 헛헛할 때 다시 돌아보는 안타까운 중생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